Cycling Pedia

신데렐라 이야기

1988

1988년, Brittany에서 투르 드 프랑스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밤, Nathan Dahlberg는 1,000 km 떨어진 벨기에의 Ghent의 집에서 저녁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 때 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Dahlberg가 나중에 회상하길, "나는 저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쌀과 콩나물에 약간의 토마토와 오이를 섞은 것이었습니다."

"그 날 경기를 완주했고, 배고프고 피곤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밤 9시였고, 누가 문을 두드리나 궁금했습니다."

동화 이야기처럼 기회가 왔다. 문을 두드린 벨기에인은 Dahlberg에게 프랑스에 있는 7-Eleven 팀이 선수 한 명이 부상을 당해서, Dahlberg가 교체 멤버로 필요하다고 전화해왔다고 전했다.

7-Eleven의 지원 선수인 Bob Roll이 워밍업 하던 도중 관중과 충돌했다. Roll은 머리와 무릎을 다쳤고, 다음 날 시작될 경기의 팀원 9명에 낄수 없었다.

Dahlberg가 경기 출발전에 도착할 수 있다면 경기에 대신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팀은 8명으로 경기를 할 것이다.

가끔 투르 드 프랑스에서 팀이 부상당한 선수를 대신할 교체 선수를 부르긴 하지만, 그 전에는 막판에 로스터에조차 없었던 1년차 프로 선수를, 그것도 그 날 185Km의 경기를 뛴 선수(그 날 순위는 24위였다)를 데려오는 경우는 없었다.

Dahlberg가 말하길, 그가 한 첫번째 일은 일단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막 경기를 마쳤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는 싱크대에 접시를 그대로 내버려둔채로, 벨기에를 떠나 Brittany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우린 밤새 운전을 했습니다. 9:30에 출발하여, 7-Eleven 팀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 날 5:30이었습니다. 차에서 3시간 정도 잤고, 호텔에 도착하자 1시간 정도 잤습니다."

아침 9시에, 그는 투르 드 프랑스의 첫번째 스테이지에 등록하였다. 몇 시간만에, 23살의 뉴질랜드인은 단거리 벨기에 경기에서 세계적인 대형 자전거 경기로 승격했습니다.

"마치 운명 같았다." 7-Eleven 팀의 감독이었던 Mike Neel이 웃으면서 이야기하였다. Neel은 Ghent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방에 전화가 없었던 Dahlberg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요구했던 사람이었다.

Neel은 Dahlberg의 승격에서 빠진 조각을 채워준다. Neel은 감독으로 점점 명성을 얻고 있는 섬세한 사람으로, 뉴질랜드 인을 고른 이유를 말했다.

"Nathan은 작년도에 7-Elven 소속의 아마튜어로서 캘리포니아의 경기에 참가했다. 그 경기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그래서 나도 약간 알고 있다. 그가 프로로 전향한 올해에도 Tour of Sicily에서 우리를 위해 경기해주길 원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Tour of Flanders와 스페인의 몇몇 경기, 그외 다른 경기에서 우리를 위해 경기를 해줬으며,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가 재능이 풍부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우리 팀과 같이 해줬으면 했다."

"물론 약간 저평가되고, 아주 먼 곳에서 온 라이더이며, 돈도 없고 지원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Neel은 어딘가 먼곳을 보는 듯한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37이 된 Neel은 10년 전에 차별 없이 유럽의 프로 경기를 뛰던 드문 미국인중 한명이었다. Greg LeMond가 1986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해서 미국 선수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훨씬 전이었다.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 Neel은 인정하였다.

"그는 난방도 없는 집에 살고 있다. 한 때 내가 살았던 곳이다. 나는 '이 선수는 그럴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했다"

"사방에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잡진 못 한다. 등록 명단에 두 명의 교체선수가 있었고, 그 중 한 명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난 Nathan을 원했다."

프랑스를 시계 방향으로 도는 3주간의 경기에서 Dahlberg는 어땠나?

"제대로 경기를 했다. 첫번째 날은 힘들었지만, 이제 잠도 제대로 잤고 내 리듬을 찾았다."

"여기는 또 다른 세계다. 벨기에에선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리를 약간 주물로 주고, 장비를 청소하고, 살기 위해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는 모든 게 갖춰져 잇다."

그는 그 날 스테이지를 시작하기 직전 다리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있는 팀의 마사지사를 가리켰다. 근처에는 메카닉이 깨끗하게 청소하여 반짝거리는 Dahlberg의 자전거를 검사하고 있었다.

"난 정말로 즐기고 있다. 완전히 휴일 같다. 난 자전거를 타고 경기만 하면 된다."

뉴질랜드 Wangnui의 토박이인 Dahlberg는 16살에 "자전거에 중독되었으며", 고등학교 시절 경기에 참가하려 했다고 이야기했다. 3년 후 1984년,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으로 왔다.

"당신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유럽으로 와야만 한다." 벨기에와 프랑스의 아마튜어 클럽에서 3년을 보낸 후, 그는 프로로 전향했다.

"처음 3년간 굴곡이 있었지만, 벨기에에서 7번의 경기를 우승했다." 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프로로서, 큰 경기에서 거든 가장 좋은 성적은 Grand Prix of Frankfurt에서 거둔 40위였으며, 그는 그 경기를 "기록을 좋지 않았지만, 내게는 좋은 경기였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투르 드 프랑스의 끔찍한 산악 스테이지를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통상 나는 다른 것보다는 클라이밍에 능하다. 나는 빠른 라이더라기보다는 강한 라이더이며, 자기 동기 부여도 확실하므로, 잘 해 나갈 것이다."

그는 지원 라이더로서, 주로 상대방의 위험한 치고나가기를 추격하거나, 팀 차량으로부터 메시지를 넘겨주는 자질구래한 일을 하고, 리더가 드래프팅을 제공하여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하였다.

투르에서의 개인적인 목표는 간단하다: "단지 살아남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팀 리더를 돕고, 7-Eleven과의 계약을 끌어내고 싶다."

투르에 참가하기 위하여, 팀과 올해 1년간 계약을 했으며, 기록에 따라 그 후 2년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팀을 위해 내가 잘 할 수록, 그건 나한테도 좋다. 팀 리더가 나에게 감사할 수록, 나는 더 잘한 것이다."

주말의 전체 순위는 낮았지만, Dahlbert나 Neel 둘다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바라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팀의 승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Neel이 말하길, "이런 게 신데렐라 이야기다. 이제 그에게는 기회가 주어졌고, 여기서 그는 가장 나은 팀 지원 선수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