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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o di Lombardia

Cycling Events2008. 3. 11. 02:17

Como와 Lecco의 두 호수로 둘러싸인 채 우뚝 솟은 언덕들. "낙엽의 경기(Race of the Falling leaves)"는 사이클링의 한 해를 마감하는 경기이다. Milan-San Remo가 시작을 알리듯이...

 


자전거 경기 시즌의 마지막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나의 건물이다.  Como 호수의 나무로 둘러싸인 언덕의 교차로에 위치한 작은 성당인 Madonna del Ghisallo이다. Madonna del Ghisallo는 1949년 교황 Pius XII에 의해 자전거 선수를 수호하기 위해 헌정된 성당이다. 그 이후 Madonna del Ghisallo는 자전거 선수를 위한 성당이었으며, 또 한 해의 사이클 시즌을 마감하는 마지막 클래식인 Giro di Lombardia를 환영하기 위해 선수들이 언덕을 지나쳐 가는 동안 종을 울린다.

성당은 사이클을 기념하는 온갖 것들로 채워져 있따. Coppi, Bartali, Merckx가 탔던 자전거들, 우승자의 사인이 담긴 Giro의 핑크 저지들, 챔피언 중의 챔패언들의 전성기의 노란 저지들. 제단 앞의 자전거 선수의 기도는 훈련 중의 건강과 안전, 모든 두 바퀴 타는 형제들의 우의를 성모 마리아(the Madonna)에게 기원한다. 벽 전체는 이탈리아의 도로에서 사망한 라이더들의 작은 사진들로 덮혀 있다.

지금은 호수까지 가는 오르막이 매끄럽게 닦여 있지만, 사이클 역사에서는 험준하다. 정상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선수에게 주어지는 500리라의 상금은 1924년 Nice에서 Alfredo Binda를 아마튜어에서 프로로 유혹하였다. "Preme"을 따내며, 치고 나갔다. 다음 해에 다시 돌아온 Alfredo Binda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쏟아지는 비 속에서 경기 코스를 따라 전략적인 위치에 늘어선 친구들이 건네주는 날계란을 먹으면서 홀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Madonna del Ghisallo는 희미한 과거를 이어주는 마지막 고리이며, 근래에도 희극이나 상징성을 보여준다. 1992년 Tony Rominger가 우승의 마지막 길목인 내리막을 방뇨하면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희극이나, 1991년 성당 뒤쪽 비탈의 좁은 "SuperGhisallo"에서 Sean Kelly의 어택 같은 상징성이다. Sean Kelly는 그 어택으로 가을의 Lombardy에서 생애 두번째의 우승을 차지했다.

Giro di Lombardia는 이탈리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는 아니다. 가장 오래된 경기의 영광은 그보다 20년이 앞선 1876년에 처음 열렸으며, 아직까지도 4일 앞서 열리고 있는 Milan-Turin이 가지고 있다. 두 경기는 Giro del Piemonte와 함께 사이클링의 한 해를 마감하는 멋진 3부작이 된다. Giro di Lombardia는 그 중 가장 중요한 경기다. Giro di Lombardia는 이탈리아 최초의 주요한 국제 경기이며, Milan-San Remo나 Giro d'Italia보다 앞선다.

190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서는 나라 전체의 자전거 경기를 발전시킬 대형 대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Milan-Turin이 있었지만, 조직위의 자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Rome-Naples-Rome, Milan-Mantua, Giro del Veneto같은 경기가 생겼다 사라졌다. Giro di Lombardia는 1903년 처음으로 제안됐지만, 부근의 도로 사정에 문제가 있었다. 도로는 노새가 다니는 길보다 약간 나을 뿐이었다.

코스는 1904~5의 겨울에 계획됐으며, 라이더들은 열심히 코스를 검증했다. 몇 군데에서는 라이더들이 한 번에 몇 백미터씩 기계로 밀어내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다른 곳에서는 기껏해야 도로 폭이 45cm에 불과했다. Milan에서 Lodi까지의 코스는 전차길을 사용했다.

코스는 그 후에도 계속 변경됐다. 몇 년간은 Como의 벨로드롬이 결승점이었다. 그러다 Milan이 결승점을 유치했으며, 다시 북쪽의 Monza의 아주 작은 마을이 됐다. 현재 코스는 서쪽은 Varese로, 동쪽은 Bergamo로 고정됐다. Bergamo를 둘러싼 언덕들은 나머지 선수들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지만, 과도하지는 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 사용된 Valico di Esino 같은 Lario Como 호수를 지나치는 큰 고개들은 지금은 너무 험하다고 여겨진다.


낙엽의 경기

홀로 우승이나 나쁜 날씨는 이탈리아에서 "낙엽의 경기"라 부르는 대회에서 흔한 현상이다. 겨울이 이제 골목 저 편에 보이고, 북쪽의 산악 지대에서는 눈이 조금씩 쌓인 걸 볼 수 있다. Lombary는 안개로 악명 높으며, 종좀 차가운 비가 경기를 강타한다. Binda는 자신이 처음 우승한 1925년을 이렇게 회상하곤 한다. "그 날은 엄청나게 춥고 비로 젖어서, 저지 주머지 바깥으로 팔을 꺼내 굽히는 것만으로도 승리 그 자체였다."

또 다른 극단적인 비가 온 경기는 1992년으로, 낙옆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근처 출신으로 새로이 세계 챔피언이 된 Gianni Bugno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으며, 그의 고향인 Milan 약간 북쪽의 Monza가 결승점이 되도록 코스가 재조정됐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이던 Bugno는 낙엽과 심한 비로 인해 스케이트 링크처럼 변한 내리막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권하고 말았다.

Lombardy에서 최고의 챔피언은 Fausto Coppi일 것이다. 그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연속 4회 우승하였으며,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었던 전겅기를 보여주면서 경쟁자들을 멀찌기 떨구면서 홀로 우승하였다. 반면 1956년 대회의 Milan의 Vigorelli 벨로드롬에서 스프린터인 Andre Darrigade에게 당한 패배는 주요한 경기에서 활약을 보여준 마지막 시기였다.

당시 Coppi는 37살이었으며, 참가 이유 중 일부는 자신의 브랜드 자전거를 알리는 것이었다. 이혼 이후 자신의 명성을 다시 쌓기 위해서 큰 대회의 우승이 심각하게 필요했다. Ghisallo에서 어택하였지만, Milan 외곽에서 추격하는 대규모 그룹에 따라 잡혔고, Vigorelli 벨로드롬 500미터 앞서부터 스프린트를 시작했다. 결승점 단 2미터 앞에서 Darrigade가 앞서버렸다. 챔피언 중의 챔피언은 눈물과 함께 무너졌다. 그 이후 그의 선수 생활은 차차 내리막에 접어들었지만, 은퇴를 거부하면서 젋은 선수들과 계속 경쟁하려 했다.

Sean Kelly 또한 이 경기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83년 Como의 결승점에서 Kelly, Greg LeMond, Adri van der Poel, Hennie Kuiper, Francesco Moser가 벌였던 아슬 아슬한 스프린터는 아일랜드 인이 "클래식의 왕(King of the Classics)" 시대를 열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다음 4년간 막기 힘들었다. 1991년 역시 Kelly의 해였다. 새로이 추가된 악명높게 가파른 "SuperGhishallo"에서 치고 나가, 프랑스 선수인 Martial Gayant를 완전히 떨쳐내고, 머리 뒤에서 손을 뻗는 자신만의 독특한 승리 포즈즐 보여줬다. 결승점은 결코 낭만적으로 들리진 않는 Monza의 Viale dell'Industria였다.

그 해 Kelly는 쇄골 골절로 클래식 경기를 기권하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그가 소속된 PDM 팀이 단체로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의 형이 죽는 등의 사건이었지만 이를 극복했다. 불운의 마지막은 훈련 중에 차량이 그를 치어 무릎에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Lombardy 경기 초반에는 자전거에서 내려올 지경까지 갔지만, 이를 극복하고 그 후 광경을 보여줬다. 이런 작은 것들이 위대한 승리를 만들어낸다.

1984년의 Bernard Hinault도  1983년의 무릎 수술 이후 "the Badger"의 부활을 알리면서 위대한 단독 우승을 거뒀다. 다음 해에는 Merckx와 Anquetil처럼 투르 드 프랑스에서 5번째 우승하였다. 1989년 Tony Rominger는 Milan까지 단독으로 긴 치고 나가기를 감행함으로써, Vuelta a Espana의 해트 트릭을 포함한 자신의 진정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1993년 웃는 스위스인이라 불린 Pascal Richard가 이 경기로 자신의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3년 후에는 프로에게 처음으로 개방된 올림픽 도로 경기에서 우승했다. 많은 사람들이 2001년 우승자로 기대한 금발 머리의 이탈리아 선수인 Danilo di Luca는 영화 스타와 흡사한 외모로 인해 "디카프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Lombardy에서 가장 멋진 승리는 바로 일주일 전 열린 세계 챔피언의 무지개 저지를 입은 채 우승하는 것이다. 무지개 줄무늬는 그 선수를 아주 눈에 뛰게 하며, 세계 챔피언의 뒤는 아주 좋은 위치라는 걸 알고 있는 경쟁 선수들이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두 대회의 "더블(double)"을 이루는 경우는 아주 보기 힘든 업적이며, 가장 최근에는 1998년 스위스 선수인 Oscar Camenzind가 이루었으며, 그 전에는 1931년의 Binda, 1963년 Tom Sompson, 1971년 Eddy Merckx가 있따.


노력와 환희

10월의 한 토요일에 tifosi의 열광적인 팬으로 둘러싸인 작은 성당은 이 사람들이 백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전거 경기의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준다. Coppi의 흉상이 호수와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를 내려다 본 위치에 서 있다. Coppi는 이 도로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이탈리아 자전거 경기의 전성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흉상에 새겨진 명패에는 tifosi가 자신들의 영웅이 이 곳을 지나칠 때 왜 환호하는지? 왜 3월 Milan-San Remo와 함께 자전거 경기 시즌을 환영하기 위해서 Turchino 고개로 몰려가는지? 그리고 그 사이의 몇 달간 매주 유럽 전역의 도로 가에서 자신과 친구들과 함께 도열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신은 인간이 인생이라는 힘든 도로에서 노력하고 환호하기 위한 도구로 자전거를 사용하도록 창조하였다." 안에 담긴 과거의 기억들, 밖에서 펼쳐지는 현재의 힘든 경기, 자전거의 목적에 대한 가능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올 해에도 노력과 환희가 끝나간다. 그러나 내 년에도 tifosi는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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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 이 글은 HanDDol이 A Century of cycling의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이 글은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므로 옮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의 URL은 http://handdol.tistory.com/entry/Giro-di-Lombardi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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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 작성 : 200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