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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lta의 다채로운 역사

by Graham R.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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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elta a Espana가 내일 시작된다. Vuelta는 투르 드 프랑스나 Giro D'Italia만큼 권위 있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독특하고 파란 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유럽의 1930년대에 시작되어서, 그 후 수십년간 스페인의 정치 불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서 성장했고, 현재는 그랜드 투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은 1935년부터 지금까지의 Vuelta를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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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av Deloor는 1935년 첫번째 Vuelta에서 우승하였고, 1936년의 두번째에서도 우승하였다.


다가오는 먹구름(The Gathering Storm)

윈스턴 처칠이 '다가오는 먹구름'에 대비하기 위해 중립을 지키는 대영제국과 미국의 동맹을 다지는 동안, 악의 군대는 점점 몰려오고 있었다. 1934년, 히틀러는 나찌 독일을 만들기 위한 길인 총통이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프랑코 장군이 그가 사망하는 1975년까지 파시스트 독재자가 되기 위한 권력 기반을 다졌다. 스페인 내전의 근원은 1923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내전 자체는 1936년에 시작되어서, 1939년에 끝났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Vuelta는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어려운 시기에 자전거 경기를 만들 생각을 하는 미친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울 것이다. 그러나 1935년 한 신문(Diaro Informaciones)이 첫번째 Vuelta a Espana를 준비하고, 시작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회의 설립 목적(신문 발행 부수)은 투르 드 프랑스나 Giro d'Italia의 시작과 비슷하였다. 1935년부터 1955년까지의 대회는 차례로 닥쳐온 전쟁, 가난, 전쟁의 결과로 피폐해진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힘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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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시작된 Vuelta에게 또 하나의 어려움은 Giro가 항상 같은 때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좋은 외국인 선수는 이탈리아로 가버렸다. 이렇게 해서 Vuelta는 그랜드 투어의 3번째이며, 가장 권위가 떨어지는 대회가 되었다.

1995년이 되어서야 Vuelta는 현재의 9월로 옮겨갔다. Vuelta는 시기를 변경하면서 많은 이점을 얻었으며, 프로 팀 역시 세 개의 그랜드 투어가 적당한 간격을 둠으로써 운영에 도움이 되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
프랑코와 히틀러가 스페인의 참전(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이루이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독일의 동맹을 거부하였고 전쟁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런 결과로 1941-42년 Vuelta가 열리는 게 가능했다. 1943년, 세계는 엄청나게 시끄러웠고 이런 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자연스럽게 외국인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다. Vuelta는 1945년 다시 시작되어, 1948년까지 매년 개최되었다. 1949년 대회는 없었고, 1950년 다시 개최되고, 1955년까지 또 대회가 없었다. 1955년 이후에는 끊어지지 않고 매년 열려왔다.

전쟁 직후의 기간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스페인은 내전으로 갈기 갈기 갈라졌으며, 서로 증오를 품게 되었다. 그래서 Vuelta가 주최될 수 있었고 선수들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헌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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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가 스테이지에 폭탄 테러를 일으킨 1968년 경기에서 Felice Gimondi가 우승하였다.

더욱 최근으로 오게 되면, 1968년 폭탄 테러가 Pamplona로 향하는 도로에서 일어나며 경기는 테러리스트의 제물이 될 뻔 하였다. 그 날의 스테이지는 무효화되었지만, 사고 다음 날에도 Vuelta는 계속되었으며, 이탈리아의 Felice Gimondi가 인상적인 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 1970년대가 끝나갈 때쯤 Vuelta는 다시 한 번 존립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1979년 경기 시작 3달 전 조직위가 모두 사퇴하였다. 경기는 결국 개최되었고, 지루한 경기의 결과로 네덜란드의 Joop Zoetemelk가 우승하였다.

스페인 사람에게 있어 전후 가장 중대한 사건은 1975년의 독재자 프랑코의 사망이었다. 이로 인해 1977년 40년만에 첫번째 민주적인 선거가 치뤄졌으며, 그 때 이래 스페인은 완전한 현대적인 민구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와 함께 자랑스런, 우아한, 풍부한 역사로 인하여 투르와 Giro와 더불어 그랜드 투어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초기의 대회

1935년에 종합 우승을 의미하는 "황금(Oro)" 저지를 첫번째로 차지한 이는 벨기에의 Gustav Deloor였다. 그는 스페인 선수인 Mariano Canardo와 엄청나게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초기의 TdF처럼, 첫번째 Vuelta는 250Km이상의 엄청나게 긴 10개의 스테이지와 4개의 짧은 스테이지로 구성되었다.
1936년 두번째 Vuelta도 역시 Deloor가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 해 4월 스페인의 상황이 극도로 나빠서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의 시작이 의문시되었다. 예상대로 대회는 잊혀지다시피 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박한 전쟁에 더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이후 Deloor의 주요 라이벌이 된 스페인 유망주인 Julian Berrendero가 나타났다. Vuelta가 끝난 몇 주 후(1936년 7월) 내전이 발발하였으며, 스페인은 끔찍하고 유혈의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1936년 Vuelta 도중에도 군 복무중이던 Berrendero는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서, 강제 수용소에 억류되어 지냈다. 그 당시 그는 살아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돌아와서 1941년과 42년의 Vuelta에서 모두 우승하였다.

오늘날의 선수들이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며 만전을 준비를 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Berrender 세대의 선수들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엄청난 시련을 겪은 후 그랜드 투어에 참가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국가의 자존심

모든 그랜드 투어가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자신의 고국에서 펼쳐지는 경기에서 자국민간의 '내전'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고국에서 우승하는 것은 명예와 자존심의 문제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Vuelta는 고국의 경쟁자들끼리 승리를 나누기보다는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이런 경쟁은 경기의 승리를 외국의 참가자들에게 넘겨주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1958년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Bala와 Lorono 사이의 사적인 불화로 인하여 프랑스의 Jean Stablinski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영원한 2등(Eternal second)'인 Raymond Poulidor은 항상 Anquetil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였다. 1964년, Anquetil이 프랑스로 돌아갔고, Poulidor은 스페인 간의 또다른 내전에서 이익을 얻었다. Perez Frances, Manzaneque, Otano는 모두 강력한 우승후보였지만, 그들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서 Poulidor이 멋진 우승을 차지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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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 Robert Millar는 외국인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고 Pedro Delgado에게 "황금 저지"를 넘겨주기 위해 스페인 선수들이 결탁했다고 주장했다.

1985년 스코틀랜드는 Robert Millar가 마지막 두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할 때 6분의 리드를 지킴으로써 첫번째 Vuelta의 우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록과는 반대로, 스페인 선수들은 Millar에게서 우승자의 저지를 빼앗아 Pedro Delgado에게 우승자의 무대를 넘겨주기 위해 사악한 동맹을 하였다.

몇 년전에도, 최종 우승자인 Aitor Gonzalez가 자신의 팀 동료인 Oscar Sevilla를 어택하는 장면을 보았다. Gonzalez는 이를 부인했지만, 팀원 간의 경쟁의 확실한 증거였으며 모두가 이를 목격하였다.


크나큰 기대

스페인 국적의 두 명의 위대한 챔피언은 자신을 경외하는 대중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아마도 스페인의 위대한 클라이밍 챔피언인 Ferderico Bahamontes(톨레도의 매로 알려진)를 둘러싼 사건들이 가장 기묘하다. 1959년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자였으며 TdF 산악왕 저지를 6번 획득한 그는 고국의 투어에서 우승할 걸로 기대되었다. 1956년, 감정적인 기복과 초조함으로 인해서 시간상의 이점을 잃어버리고, 경기에서 졌다. Bahamontes는 1960년 또 한 번 자신을 논란의 중심으로 몰아넣으며, 말 그대로 경기를 버렸다.

스페인이 가장 선호하는 선수이자 현대의 가장 위대한 스페인 선수였던 Miguel Indurain도 Banmontes의 뒤를 따라서, 자신의 모국에서 열리는 그랜드 투어에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 하였다. 그는 5년간 투르 드 프랑스를 휩쓸었다(1991~1995). 그러나 1991년 Vuelta에서 자신의 특기인 타임 트라이얼에서 패하며, 동포인 Melchor Mauri에게 종합 우승을 넘겨줬다. 그의 계승자인 Armstrong 처럼, Indurain은 TdF의 몸 상태와 정신력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한여름의 광휘를 Vuelta에서는 반복할 수 없었다.

1996년 스페인과 전세계의 사이클 팬은 Indurain이 6번째 투르 우승에 실패하며 왕위를 넘겨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Vuelta에 참가하였지만 스테이지 13에서 기권하고,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변화의 시기

1960년대와 70년대 프랑코가 여전히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Vuelta는 점점 더 힘을 얻고 자신의 지위를 얻어갔다. 첫번째 예고로 1962년 대회에는 위대한 Jaques Anquetil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이후 첫번째로 5번 TdF 우승자가 된 그는 위에 문제가 있는 채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결국에는 경기를 포기하였고, 우승은 그의 팀동료인 위대한 독일 챔피언 Rudi Altig가 차지하였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출신인 Anquetil은 매우 자존심이 강한 귀족적인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1963년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와, 첫 날부터 Vuelta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전 경기 내내 선두 저지를 내놓지 않았다.
1970년대의 몇 명의 위대한 챔피언들이 Vuelta를 휩쓸었다. 전통적인 스페인의 위대한 산악 클라이머의 계보 중 하나였던 Jose Maris Fuente가 1972년과 74년에 우승하였다. 또한 1972년 대회에서는 Fuente의 소속팀인 KAS 팀이 대회의 모든 부문을 휩쓸면서, 1966년의 영광을 반복하였다. 1973년에는, 벨기에의 Eddy Merckx가 대회의 유일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경기 내내 스페인의 Luis Scana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77년 대회에서는 벨기에의 Freddy Maertens는 대회를 완전히 압도하면서 경기 내내 대회를 지배하였다. 첫날부터 결승점까지 선두를 지켰으며, 20개의 스테이지 중 13개의 스테이지에서 승리하였다.


현대

1980년대는 새로운 국제적인 강자인 콜럼비아의 클라이밍 전문가인 Luis Herrera를 만들어냈다. 그는 1987년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강한 남자들 중에서 가장 강하였다. 아일랜드의 Sean Kelly는 1988년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1982년 대회는 마지막 스테이지가 끝난 이틀 후 종합 우승자인 Arrovo가 금지 약물을 사용했음이 발견되는 엄청난 스캔들에 휩싸였다(다른 세명의 선수도 함께 적발되었다). Arroyo는 우승을 박달당하였으며, 스페인의 Marino Lejarreta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1983년 Hinault가 우승하였던 Vuelta를 최고의 대회로 기억한다. 엄청난 경쟁으로 인해서, Hinault를 비록하여 선두권 선수들은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Hinault도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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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위대한 Tony Rominger, 1992~94년까지 3회 연속 우승

Tony Rominger(스위스)는 1992, 93, 94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Vuelta의 우승 기록을 세웠다. 최근 은퇴한 Laurent Jalabert(프랑스)가 1995년 대회를 우승하였다. 1996년과 1997년 대회에서는 또 다른 스위스 선수인 Alex Zuelle가 차지하였다.

1997년에는, 처음으로 스페인 밖에서 대회가 시작하였다. 출발지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이었다. 요즘의 대회는 그랜드 투어라는 자리에 걸 맞게 제대로 치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인정하는 TdF 뒤의 두번째 아니면 세번째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각각의 그랜드 투어는 주최 국가의 문화와 기질을 반영한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 코스, 지형, 날씨, 경쟁, 그외 다른 많은 요소들이 대회의 가혹함을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라이더들만이 마지막 시상대에 오를 수 있다. 대회는 아름다운 도로, 멋진 건축물,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르막을 가로 질러서 장관을 연출해낸다. 이번 달에 우리는 이런 장관을 보게 될 것이다.

편집자의 수정: 작년 '우승자'였던 Roberto Heras가 마지막 2번째 스테이지에서 EPO 양성 반응을 보인 직후였지만, 올해의 대회는 2006년 그랜드 투어중 스캔들이 없는 유일한 대회를 다짐하고 있다. (물론 Giro는 '깨끗한'대회로 끝났지만, 우승자인 Ivan Basso가 Operacion Puerto와의 관련은 우승에 충분한 의문의 여지를 보여준다.) 9월의 스페인에 멋진 경기를 보아왔지만, 도로 경기가 떳떳해질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2006년이 말끔하게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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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 이 글은 PezCycling의 글(http://www.pezcyclingnews.com/?pg=fullstory&id=4289)을 HanDDol이 번역한 글입니다. 이 글의 URL은 http://cyclingpedia.tistory.com/entry/ColorfulVuelta 입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므로, 다른 곳에 옮기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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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이력
 - 처음 작성 : 2006. 8.27